인공낙원 clips book


광장, 일그러진 구경거리와 균형 잃은 삶
어떤 역사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야말로 '국가 상징 가로'를 오브제로 삼는 작업이기 때문에 매우 절실한 토론 과제인 것이다. 24p
과도하게 치장된 국가주의적 장식물이나 서울시정을 홍보하기 위한 크고 작은 시설물. 27p
모더니즘과 국가주의가 맹렬하게 팽창하여 형성해낸 그 모든 건물은 사람들의 접근이나 시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대로 뱉어내거나 차단한다. 30p
서울시는 다소 접근성이 떨어지더라도 국가 중심 공간이라는 상징성을 채택한 셈이 되었는데, 이 선택에 서울시의 '공간 이념'이 사실상 반영된 것이다. 36p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광화문광장이 '국가 상징의 축'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물음이다. 36p
어떤 식으로든 '국가 상징'에 부합하거나 버금가는 조형물과 행사만이 허용된 관제 광장이 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광장이 시민의 일상 공간이 아니라 '국가 상징의 거대한 공간'이 되는 순간, 관제화 되거나 박제화되는 운명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37p
광화문광장은 낡은 시대의 감수성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국가 상징'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41p
내밀한 사유와 고요한 산책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 과도한 홍보 영상과 소음 덩어리 아래에서 사랑은, 그야말로 그로테스크한 절망과 다름없을 것이다.  44p

극장, 판타지 너머의 현실
요즘의 문화 인식으로는 반드시 보존해야 할 '근대 건축물'이었던 을지로의 국도극장과 초동의 스카라극장은 각각 1999년과 2006년에 철거됐다. 한 세대의 문화와 추억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58p
과거나 지금이나 극장은 도시문화의 꽃이며 당대 유행의 집합처이고 무엇보다 영화라는 최첨단의 감각이 팽팽하게 몸을 뒤트는 곳으로, 이 공간의 생성과 변천은 그 자체로 한 시대의 집합적 정서와 기억을 말해준다. 64p
산업화 시대의 부도심권 공장지대가 날로 팽창하는 거대 도시의 문화 요충지로 지목된다. 부도심권의 공장들은 수도권 바깥이나 저 동남아의 어딘가로 옮겨간다. 동시에 그 주변에서 생계를 유지하던 가난하고 조촐한 삶들도 말갛게 삭제된다. 그 자리에 거대한 문화유통 시설이 들어선다. 땅값과 건축비와 또 개발 이후의 활용 및 이윤 창출에 있어 오직 거대기업의 문화산업 분야만이 부도심권의 막대한 공간을 차지할 만한 권력과 금력을 휘두를 수 있으며, 실제로 모두가 그렇게 되고 말았다. 67p
발터 벤야민이 근대 도시 파리에 대해 성찰했던 '산책자' 개념은 오늘날 거대한 인공 쇼핑몰 안에서 손쉽게 관찰할 수 있다. 71p
유통업계 종사자들은 이 거대한 공간을 '복합 문화 공간'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실은 '대형 소비 공간'이다. 우울하다. 그 사이로 거닐어야 하고, 그 속에서 연인을 만나고 그 속에서 가족의 나들이가 이뤄진다. 적어도 한 세기 전에는 사람들이 공원이나 물가로 산책을 나갔다. 그런데 이제는 인공의 거대한 쇼핑몰 안에서 산책한다. 82p

모델하우스, 가설무대의 삶
그런데 한강맨션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정부 차원에서 아파트에 대한 인식을 바꿀 정책적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99p
97년 외환위기 이후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를 돌파하려는 건설사의 브랜드 전략은 삼성물산의 래미안을 시작으로, 한 번 듣고는 그 뜻을 좀처럼 헤아릴 수 없는, 실은 그 어휘의 사전적인 정확한 뜻보다는 그 낱말이 연상시키는 뿌연 이미지를 확산시키는 전략으로 순식간에 번져갔다. '하이페리온', '푸르지오', '자이', '리첸시아', '힐스테이트'같은 말들이 흐린 하늘에 띄워올린 애드벌룬처럼 이 한반도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101p
각 건설사는 영어, 프랑스어, 러시아어에 중세풍의 유럽이나 도희적인 미국의 고루한 이미지를 누더기처럼 이어붙인 브랜드 이미지를 집 한 채 장만하려는 서민들의 심연 깊숙한 곳에 낙인처럼 남겨놓았다. 101p

모텔, 최후의 망명지
최신의 모텔은 여관이나 모텔(또는 호텔)이라는 표현을 최소화하거나 아예 사용하지 않는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통해 오히려 심미적 효과를 높인다. 140p
격정에 시달리다 못해 어쩔 수 없이 동반해버린 어두침침한 모텔이 아니라 정렬의 한순간을 맘껏 소비할 수 있는 아늑하고 고급스러운 욕망의 공간으로 신속히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142p
이러한 작업과 더불어 젊은 세대에 속하는 작가들도 '모텔'이라는 공간을 의미 있는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좀 더 연배가 있는 작가들이 여관이나 모텔을 통하여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아날로그적 인간관계의 추억을 더듬어보았다면, 그보다 젊은 작가들은 이 공간이 가진 익명성, 폐쇄성, 인공성, 일시성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파편화되고 단절된 오늘의 관계망들을 예리하게 포착하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146p

백화점, 욕망의 진앙지
당장의 실용적 욕망에 따른 소비뿐만 아니라 잠재적 소비, 그러니까 내면의 욕망을 끌어올리거나 원래는 없었던 욕망까지 사람들의 내면에 드리워야 하는 유통 시설이다. 164p
이 현대의 공간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확실한 실험장이 된 미국으로 건너가 20세기의 소비 천국을 만들었다. 173p
다층적인 기억이나 복합적인 역사를 이 공간에서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새로운 공간과 시설들의 행렬이다. 178p
키치적 감각의 천박함. 179p
오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해온 해당 지역의 장소성은 말끔하게 사라지고 그 위에 자본과 지방 정부와 소비의 욕망이 뒤엉킨 초대형 초고층의 물신이 들어서고 있다. 182p

카지노, 폐광지의 불야성
지금 강원 남부의 여러 마을은 탄광이라는 오랜 숙명을 한편으로는 되새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확장을 하거나 개명을 하거나 증개축을 하면서 필사적인 몸부림을 치고 있는 중이다. 189p
거대한 산악들이 서로 어깨를 맞부딪치며 겨우 한 뼘 공간들을 여투어놓았는데, 그 골짜기에 사람들이 스며들어가 살았다. 194p
그러나 욕망의 본질은 '지역 발전'이었고 안타깝게도 현재의 흐름이 지속될 경우 그 '발전'이란 평창 일대의 땅을 70퍼센트 넘게 소유했다는 외지인과 토건 세력과 '국위선양' 운운하며 중앙무대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사람들의 '발전'이 될 뿐이다. 217p
삶은 지속되어야 하고 이 일대의 지형지물로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해야 한다. 217p

테마파크, 웰컴 투 원더랜드
이제는 "구름 사이로 달이 빠져나오자 반짝, 개천이 드러났다"고 말할 만한, 그런 집합적 경험조차 멸종돼가고 있지 않은가. 물론 우리 마음속에는 아직도 버리지 못한, 자연과 육친성을 맺었던 때에 대한 원형질의 기억이 남아 있기는 하다. 224p
이를 바탕으로 월트디즈니사는 1971년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LA 디즈니랜드의 100배가 넘는 월트디즈니월드를 개설해 위락레저문화를 선도했고 이를 일본 지바현, 프랑스 마른느라발레 등으로 확장해 가히 '파크 아메리카나'를 완성했다. 245p
캐리비안베이는 카리브해를 흉내낸 일종의 거대한 '모사품'이지만 이 모사품은 적어도 시설 그 자체의 측면에서 오히려 실제보다 더 쾌적하고 편리하다. 249p
놀이기구는 역설적으로 세속의 엄숙함을 강조하는 현대의 거대한 모뉴먼트다. 254p

경기장, 그 많은 '개인'들의 용광로
'문명화와 현대성에 의해 거세된 원시적 에너지'를 회복하려는 현대인의 욕망. 이것이 축구의, 월드컵의 1차 에너지다. 261p
현대 사회의 거대한 메트로폴리스에 이 아름다운 열정의 용광로가 없다고 상상해보자. 그 얼마나 삭막한 콘크리트 더미이겠는가. 경기장은 세계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회복하려는 현대인의 합창 무대인 것이다. 295p

박물관, 유한한 삶과 영속의 시간
미셸 푸코가 "박물관은 역사 속에서 줄곧 권력과 결탁하여 제국주의와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들을 선전하고 대중을 교육시킨 도구 역할을 해왔다'고 비판한 것처럼 박물관을 통한 근대성의 욕망은 제국적 시선에서 세상을 수집하고 편재하고 분석하고 제시하는, 하나의 시선의 정치 장소였다. 311p
사람들은 무자비한 익명성과 찰나와 같은 유한성 저 너머의 영원성을 확인하기 위해, 장구한 시간의 축 위에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기 위해 박물관을 찾는다. 322p
박물관은 개인의 초월에 대한 갈증과 공동체의 영속성에 대한 욕망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323p

공항, 해체된 시간과 재구성된 공간
이런 작업들은 '동시의 비동시성'이 확실하게 전개되는 지금 이 시대가 사실상 개별 영토의 고유한 삶보다는 지구 전체를 관통하는 균질성이 주류임을 방증한다. 331p
결코 뿌리내리고 살 만한 곳이 아닌 곳인데, 그러나 어디 공항뿐이랴, 현대의 공간은 점점 더 이와 같은 극단의 '현재성'으로 충만되고 있으며 아무도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는다. 350p

기차역, 식민의 기억과 현대의 속도
쿠궁 콰광 하는 특유의 소리가 사라짐으로써 바깥을 볼 일이 없게 되었고, 그리하여 KTX는 풍경과 이별하였다. 365p
경춘선의 그런 서정들은 험준한 산악지대를 관통하는 중앙선이나 영동선, 가도 가도 끝없는 길 호남선이나 전라선, 쿵쾅쿵쾅 대동맥의 경부선, 젓갈내음 가득한 경강선이나 장항선, 탄광지대의 문경선이나 충북선, 그 어느 곳에나 빛깔과 향내만 달리하여 수십 년 누적되어왔으나 오늘날의 속도는 순식간에 경향 각지의 역사를 뒤바꾸고 속도를 바꾸고 삶을 바꿔버린다. 386p


  우리가 살아가는 억압된 욕망들로 가득찬 시대를, 거대한 스케일의 것들 사이에서 점차 소외되어가는 이 도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무방향성의 시대에 현대 도시 문화와 삶에 대한 성찰이자, '인공낙원'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는 젊은 디자이너중 한명으로써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엿볼 수 있었던 개인적 삶의 성찰의 시간이었다. 가상현실이 현실을 대체해나가고 있는 이 시대에 인공낙원에 대한 욕구와 요구는 피할 수 없는 길인 것 같다. 자연이 그립다고 속도성과 확실성을 포기하고 대자연속으로 뛰쳐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꿈꾸던 원생의 자연의 기억도 희미해지고 오염되어 '서울숲'이 우리가 아는 숲의 전부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인공'낙원을 향한 열망 속에서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인공'낙원'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 좀 더 고민하고 경험하고 그 결과물들을 토해내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